6일 현충일, 영종도에서 켈로부대 추도식을 가져
6일 현충일, 영종도에서 켈로부대 추도식을 가져
  • 우경원 기자
  • 승인 2019.06.0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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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군번도, 계급도 없는 부대, 그들을 위해 영종뉴스가 나섰다.
▲켈로부대 충혼탑앞에서
▲켈로부대 충혼탑앞에서

인천시 중구 을왕동, 왕산해수욕장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켈로부대 (별칭;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에서 6일 현충일 당일 오전 10시에 켈로부대 충혼탑에서 추도식을 가졌다.

이날, 인천공항을 사랑하는 모임  (공사모; 회장 유해운), 용유동 자생단체연합회 (회장 강동규) , 주민자치위원들 및 근처 지키고 있는 17사단 부대원들과 인천 중구 이성태구의원이 참석하여 조촐한 추도식을 의미 있게 가졌다.

▲ 17사단 장병들
▲ 17사단 장병들

준비시간 부족과 영종도에 외부에서 현충일 행사들이 있어서 참석을 불가피하게 못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6.25 전쟁사에 매우 의미 있는 부대의 충혼탑과 치열했던 전투지가 영종도 바로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영종도 주민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알아야 한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영종뉴스와 공사모가 이번 추도식을 갖게 된 배경이다.

▲ 헌시낭독하는 공사모 유해운 회장
▲ 헌시낭독하는 공사모 유해운 회장

실제적으로 켈로 유격백마부대 전우회가 있고, 그동안 추모식이 열렸지만, 올해는 사정상 열리지 못하게 된 시점에 이렇게 추도식을 갖게 되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전우회와 의견 조율하여, 이곳 충혼탑을 널리 알리고, 영종도에서 정기적으로 현충일 행사를 열 수 있도록 차근 차근 준비 하기로 했다.

오늘 추도식 사회는 정민태 공사모 부회장이 차분하게 진행하였다.

▲ 헌화하는 이성태 중구의원
▲ 헌화하는 이성태 중구의원

개회사와 추도사를 유해운 공사모 회장, 강동규 용유동 자생단체연합회 회장, 17사단 김영복원사 , 이성태 중구의원순으로 이번 추도행사의 의미와 앞으로 우리가 이곳을 어떻게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히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그동한 충혼행사를 간접적으로 보았지만, 이렇게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자생적으로 행사를 치루었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큰 의미를 갖고

내년에는 더 많은 지역 정치인과 관련 공무원과 주민들에 참석하여 영종도에서 잊혀지지 않는 행사로 발전되길 ...

 

KLO부대에 대해서

 1949년에 미국 극동군사령부 직할로 조직된 비정규전 부대. 6·25전쟁 중에 첩보 수집 및 후방 교란 등의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4년 해체되었으며, 특전사의 모체가 되었다.

1949년 주한미군이 전투 병력을 철수하면서 첩보 수집을 위해 창설한 비정규전 부대로,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직할한 '주한 연락처(Korea Liaison Office)'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명칭이며, KLO의 한국어 발음을 따서 켈로부대라고도 한다.

 

역사

창설 후 6·25전쟁 중이던 1951년 9월 제8240부대로 알려진 주한국제연합유격군(United Nations Partisan Infantry Korea; UNPIK)에 편입되었다. 제8240부대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1953년 8월 대한민국 육군본부 산하의 제8250부대로 재편되었다가, 1954년 3월 육군에 분산 편입됨으로써 완전히 해체되었다. 군대에 잔류한 일부 대원들을 주축으로 하여 1958년 제1전투단(제7725부대)가 창설된 뒤 제1전투단은 1959년 제1공수특전단으로 개칭되었으며, 1969년 제1공수특전단과 제1·제2 유격여단이 통합되어 특수전사령부(특전사)가 창설되었다.

구성

KLO부대는 고트(Goat)·선(Sun)·위스키(Whiskey)·이글(Eagle)·불도그(Bulldog)·리바이벌(Revival)·파인애플(Pineapple) 등 10여 개의 독립된 지대로 구성되었다. 부대원들은 창설 당시에는 북한 출신들로 채워졌으나 6·25전쟁 중에 사망자와 실종자가 늘어가자 남한 출신도 모집하였으며, 전체 대원 가운데 약 20%는 여성이었다. 이들은 군번도 계급도 없는 비정규군으로서 적진에 침투하여 첩보 수집 및 후방 교란, 방해 공작, 양민 구출 등 특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인천상륙작전

특히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KLO 부대원들은 어민으로 가장하여 북한군이 도처에 설치한 기뢰를 찾아내는 동시에 연합군 군함이 무사히 인천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바다의 상태와 항로의 수심을 측정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작전 개시를 몇 시간 앞둔 9월 14일 밤에 고트 지대장 최규봉을 포함한 한국측 3명과 미군측 3명의 특공조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팔미도 등대를 탈환하여 디데이(d-day)인 9월 15일에 등대불을 밝힘으로써 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전공을 세웠다.

해체 후

이 부대의 활동은 당시 군사기밀로 취급되었고 정전협정 이후에도 미군 당국이 2급 비밀로 분류하여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부대가 해체된 뒤 '군번 없는 군인'이었던 대원들 중 일부는 병역기피자가 되어 군복무를 다시하는 등의 고초를 겪기도 하였으며, 개별적인 기록이 확인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1984년 이 부대와 관련된 미국 육군성의 기록이 일반문서로 공개되면서 실체가 일부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제8240부대는 6·25전쟁 중에 총 4,445회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고, 약 7만 명의 적군을 살상하였다. 1993년에는 '참전군인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이 부대의 희생자 위패가 정전협정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봉헌되었으며, 생존 대원들에게도 참전용사 증서가 수여되었다. [영종뉴스 우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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