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2020년 4월 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2020년 4월 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 우경원 기자
  • 승인 2020.04.09 0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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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환(안드레아)신부님
양정환(안드레아)신부님

잊고 지냈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신학생 때의 일입니다. 나이도 저보다 한참 많은 동창은 다른 이들의 발을 잘 만져주었습니다. 교통사고를 겪은 후 몸이 좋지 않아 스스로 마사지하는 법을 배운 그는, 그 배운 것을 동창들에게 잘 베풀었습니다. 동창들이라고 해도 개중에서 친한 무리가 있는 법인데, 그때는 그 동창과 편안하게 지내기는 하였어도 특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좀 안 좋다 싶을 때 그를 찾아가 이야기하면, 그는 언제나 자기 침대에 누우라 하고는 마사지 로션도 발라가면서 마사지할 때 사용하는 기구들을 사용해 가며 저의 발을 만져주었습니다. 그러면 아프기도 했지만 잠이 스르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는 그의 발을 단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습니다. 같이 어딜 들어가면 발 냄새가 난다며 타박이나 하였지, 언제 한 번 그의 발을 만져 준 적이 없습니다. 제가 더러운 발로 가도 그는 단 한 번도 무어라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휴가를 맞춰 여행도 같이 다니고 기도도 같이 하고 취미생활도 같이 하는 특별히 친한 사이가 되어 있는데도, 저는 그의 발을 단 한 번도 만져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자리에서 그들의 더러운 발을 손수 닦아주셨습니다. 마지막 자리이니, 지금까지 숨겨두신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내시거나, 힘을 발휘하시어 그들이 진짜 하느님을 뵈었다고 믿게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분이 보여주신 모습은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시기까지 하시다니요. 이것은 종이 주인에게나 하는 모습이고, 당시에는 부인이나 자녀가 집안의 가장에게나 했던 모습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베드로 사도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하고 거절했을 만도 하지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행동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것도 필요하고, 안아주고 뽀뽀해 주는 것도 있겠고, 선물을 줄 수도 있고, 그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어 편하게 해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발을 닦아주는 것보다 진실로 그의 전부를 사랑한다는 것을 드러낼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서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고 잘 맞아서 혼인하는 것이지 진실로 서로의 전부를 사랑해서 혼인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발까지 사랑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의 얼굴도 사랑하는 것이요, 마음도 사랑하는 것이며, 그의 부족한 부분과 부정적인 면까지 사랑하고 감싸 안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신 이 마지막 모습은,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가장 최고의 모습이기에 선택하신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이 최고의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시고, 예수님이 이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완성에로 즉 목숨을 바치는 죽음에로 나아가시지요.

하느님의 사랑 안에 저의 형제자매 여러분, 늙은 부모님의 발을 보셨는지요? 허옇게 일어나고 발가락은 울퉁불퉁한 발 안에 자녀들의 삶이 감춰져 있을 것입니다. 배우자의 손이 아니라 발을 보셨는지요? 저녁에 부어있는 그 발에는 서로를 위한 사랑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모범에 따라 그 발을 씻어 주면 어떨까요? 한참 전에 부모님의 발을 씻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가족끼리 발을 씻어 주는 것이 부끄럽고 간지럽고 자연히 웃음이 나오는 행동이지요. 그래서 서로 웃음이 나와 발은 씻겨드리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것으로 사랑은 깊어지고 가정의 화목은 더 커집니다. 여러분도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꼭 실천하시기를 하랍니다. 그 동창에게는 괜스레 미안해지는 밤입니다. [영종뉴스 우경원 기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양정환(대건안드레아)신부는 인천 중구 영종국제도시에 위치한 공항신도시에 있는 신공항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활동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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