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원 칼럼] 해방 5년 만에 국군 8개 사단, 누가 대한민국 군대를 만들었나
[우경원 칼럼] 해방 5년 만에 국군 8개 사단, 누가 대한민국 군대를 만들었나
  • 우경원 기자
  • 승인 2026.10.22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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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군 출신 장교들의 군사 경험, 대한민국 창군의 중요한 토대가 되다
6·25전쟁의 공적과 일제강점기 경력, 역사는 모두 기록해야 한다
[우경원 칼럼] 해방 5년 만에 국군 8개 사단, 누가 대한민국 군대를 만들었나
[우경원 칼럼] 해방 5년 만에 국군 8개 사단, 누가 대한민국 군대를 만들었나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에는 독립국가를 지킬 제대로 된 군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불과 4년 10개월 뒤인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은 북한군의 전면 남침을 맞았다. 당시 우리 육군은 8개 사단, 약 9만 6천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과연 누가 이처럼 짧은 기간에 군대를 조직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역사적 사실을 살펴봐야 한다. 바로 일본군과 만주국군 출신 장교들이 대한민국 국군 창설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에는 군대를 만들 사람이 부족했다

1945년 당시 한반도 남부를 통치하던 미군정은 군사조직을 갖추기 위해 군사 경험자를 찾았다.

그 결과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가 설립됐다. 이 학교에서 배출된 초기 장교 110명 가운데 일본군 출신이 87명, 만주국군 출신이 21명, 광복군 출신이 2명이었다.

초기 핵심 장교의 대부분이 일본군이나 만주국군 경력자였던 것이다.

이는 국군 전체가 이들로 구성됐다는 뜻은 아니다. 이후 광복군 출신을 비롯한 다양한 경력의 인물들이 창군에 참여했다. 그러나 초기 군 지휘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기존 군사교육을 받은 장교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군대는 사람을 모아 군복을 입힌다고 만들어지는 조직이 아니다.

부대를 편성하고, 지휘계통을 정하고, 병력을 훈련시키며,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보급과 군수체계를 운영해야 한다.

그러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인력이 부족했던 시절, 기존 군사 경력자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5년 만에 8개 사단,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1946년 1월 15일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됐다. 이후 연대와 여단이 확대됐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정규 국군으로 발전했다.

1949년에는 육군의 주요 여단이 사단으로 개편됐다. 6·25전쟁 직전에는 8개 사단을 갖춘 조직으로 성장했다.

해방 직후 제대로 된 군대조차 없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놀라울 만큼 빠른 조직 확대였다.

물론 당시 국군에는 전차와 중화기 등이 부족했다. 편제상 사단을 갖췄다고 해서 충분한 전투력을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군의 기본 지휘체계와 교육훈련 조직을 단기간에 구축한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이 과정에는 미군정의 정책과 지원, 한국광복군 출신의 참여, 육군사관학교를 통한 장교 양성, 그리고 일본군·만주국군 출신 인력의 경험이 함께 작용했다.

만주국군 출신 장교들이 없었다면 6·25전쟁은 어떻게 됐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때로는 가정을 통해 어떤 역할이 중요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백선엽, 정일권, 김백일 등 만주국군 출신 장교들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주요 지휘관으로 활동했다.

백선엽은 낙동강 방어선의 다부동 전투에서 제1사단을 지휘했다. 정일권은 전쟁 초기 육군참모총장을 맡아 전시 지휘체계를 이끌었으며, 김백일은 제1군단장으로 북진작전에 참여했다.

이들이 모두 없었다면 당시 군 지휘체계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지킨 공적을 일부 장교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수많은 국군 장병과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전쟁을 버텨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6·25전쟁의 승패를 소수 장교의 출신 경력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무리다.

친일 경력과 대한민국 수호의 공적은 별개의 역사적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만주국군에 복무했던 장교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면, 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만주국은 일본이 중국 동북부에 세운 괴뢰국이었다. 만주국군은 일본의 군사적 통제를 받았으며 항일세력에 대한 토벌작전도 수행했다.

특히 간도특설대 등 일부 부대의 항일세력 탄압 경력은 엄정하게 평가받아야 할 역사적 문제다.

그렇다고 해방 이후 이들이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6·25전쟁에서 수행한 역할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반대로 6·25전쟁의 공적을 이유로 일제강점기의 잘못된 행적까지 정당화해서도 안 된다.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어느 한 시기의 공적만도, 과오만도 아니어야 한다.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인 사실에 따라 기록하고 평가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대한민국 국군은 해방 이후 극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탄생했다.

군사 경험자가 부족했고, 무기와 장비도 충분하지 않았다. 국가 재정 역시 열악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다양한 군사 경력자들이 참여해 군 조직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일본군과 만주국군 출신 장교들의 경험이 활용됐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경력을 무조건 미화하거나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해방 이후 불과 5년 사이에 국군의 기본 조직이 어떻게 구축됐으며, 그 군대가 어떤 희생과 지원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냈는가 하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의 과오는 과오대로 기록하고,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6·25전쟁에서의 공적은 공적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정치적 논쟁의 도구가 아닌, 사실과 교훈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세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과거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국군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아는 일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비난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이다.

우경원 | 언론인·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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