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원의 시사칼럼] 역사 왜곡은 누가 판단하나…영화 앞에서 달라지는 정치권의 원칙
건국전쟁2’에는 역사적 사실 검증 요구, ‘암살자(들)’에는 표현의 자유 강조…민주당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국민의힘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반된 대응…영화를 정치적 이해관계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돼
[영종뉴스 우경원 기자] 영화 한 편을 둘러싼 정치권의 태도가 논란이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며 영화의 내용과 심의 과정을 문제 삼던 정치권이 다른 영화에서는 창작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2025년 영화 ‘건국전쟁2’의 역사적 해석을 강하게 비판했던 것과 달리, 2026년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면서 그 판단 기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두 영화는 성격과 쟁점이 다르다. 그러나 정치권이 자신들과 역사 인식이 다른 작품에는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면서, 다른 작품에는 창작의 자유를 강조한다면 그 차이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역사 왜곡을 문제 삼던 민주당, 이번에는 표현의 자유인가
2025년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2’의 제주 4·3 관련 역사적 서술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박수현·민형배 의원 등은 영화의 역사적 사실관계와 영상물 등급분류, 독립영화 인정 심의의 적절성을 따졌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작품에 대한 검증 자체는 국회의 정당한 문제 제기일 수 있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특정 영화의 역사 해석과 심의 문제를 다룰 때는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 역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올해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국정감사 논쟁에서는 민주당이 창작의 자유를 강조했다.
국민의힘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 대한 역사적 왜곡 가능성을 주장하며 영화 관계자의 국정감사 출석을 요구하자, 민주당은 이를 창작의 자유에 대한 압박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건국전쟁2’의 역사적 서술은 국회가 검증해야 할 사안이고, ‘암살자(들)’의 역사적 묘사는 창작의 자유로 보호해야 할 사안인가. 그렇다면 두 작품에 적용한 기준의 차이는 무엇인가.
민주당은 이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 역시 같은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의 대응이 일관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조명한 영화에 대해서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작품에는 역사 왜곡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면 어느 영화에 대해서든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가까운 작품에는 관대하고, 불편한 작품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여야 모두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영화에까지 정치적 편 가르기를 강요할 것인가
영화는 정치권의 허락을 받고 제작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할 것인지는 제작자의 창작 영역에 속한다. 동시에 작품이 실제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면 그 내용에 대한 비판과 검증도 당연히 허용돼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영화의 내용에 따라 국정감사 출석을 요구하거나, 심의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선택적으로 강조하는 모습을 반복한다면 문화예술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다. 국회의 권한은 공공기관의 정책과 행정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지, 정치권이 선호하지 않는 역사 해석을 가려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설명해야 한다…표현의 자유에 정치적 예외가 있는가
이번 논란에서 민주당에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영화 한 편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입장이 아니다.
과거 ‘건국전쟁2’에 대해 역사적 사실 검증을 요구했던 기준과 현재 ‘암살자(들)’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기준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일이다.
두 영화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라는 차이, 심의 과정에 대한 질의와 창작자 출석 요구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가 실제로 국회의 대응을 달리해야 할 충분한 이유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는 특정 정당이 동의하는 영화에만 적용되는 권리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증 역시 특정 진영의 영화에만 요구되는 의무가 아니다.
이 원칙은 민주당에도, 국민의힘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역사의 판단을 정치권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에 오류가 있다면 근거를 제시해 비판하면 된다. 왜곡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사료와 연구 결과를 통해 반박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이 행사하는 권한은 필요성과 비례성을 갖춰야 한다. 국회의원이 영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창작자를 압박해서는 안 되며, 창작의 자유를 내세워 합리적인 역사 검증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자신들의 역사 인식에 맞춰 표현의 자유를 선택적으로 해석한다는 의심을 해소해야 한다.
역사를 정치가 독점할 수 없듯, 영화에 대한 판단도 정치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영화를 재단하는 국회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고, 역사적 사실과 창작의 자유를 함께 존중하는 정치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역사와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면, 먼저 자신들이 내세우는 원칙부터 일관되게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