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영종도에 고려의 무신 "두경승"의 사당이 ...
인천 중구 영종도에 고려의 무신 "두경승"의 사당이 ...
  • 나호 기자
  • 승인 2021.09.14 2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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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충절의 맥이 흐르는 영종국제도시
kbs추억의 드라마 무인시대 두경승역의 배우 임혁(사진)

[영종뉴스 나호 기자] 영종국제도시에는 고려의 "무신" 삼한후벽상공신(1193년) 두경승이 잠들어 있다.kbs추억의 드라마 무인시대를 시청해 보면 고려 무장의 충절이 인상적이다. 추석을 앞두고 영종의 혼이 숨쉬고 있는 평장사 두경승의 사당과 묘역을 찾아보았다.

인천 광역시 중구 백운산로 414번길 83-16 (두경승의 사당)

영종역 주차장이 보인다면 절반은 찾은 셈이지만 그렇다고쉽사리 모습이 들어나지는 않는다.

영종초등학교 금산분교가 근처에 있으며 우측 골목빌라가 보이고 두경승의 사당이 허름한 시골집인양 그 모습이 아쉽다.인천광역시 중구 향토문화유산 보호조례를 살펴보면 제12조 (향토문화유산 지정)1항 구청장은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소유자 또는 관리자의 동의를 받고 심의를 거쳐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평장사 두경승의 묘 초입  

사당을 지나 직진을 5분정도 하면 약간의평길과 언덕이 보인다 언덕위 초입에 먼저 보이는 문신상의 뒷모습이 보이면 바로 그곳이다.

왼쪽(평장사두릉 두공경승지묘),오른쪽은(정경부인 김해김씨지묘)

두경승은 고려 전주 만경현사람으로(현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두릉두씨의 시조이다.

정중부의 난때 무인들이 남의 재물을 탐하였으나 홀로 전문을 지키며 탐하지 않았으며 이의방의 추천으로 내순검군지유가 되고 그후 낭장이 되었다.이후 공부상서,호부상서,추밀원부사,참지정사를 역임하고 명종23년에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다.

고려는 초기 무신들이 정권에 등장했으나 전기에는 문벌귀족들이 군대의 최고 지휘 통솔권도 장악하였다.

고려후기 무신들의 불만이 표출되었는데 1170년8월 의종이 흥왕사로 행차후 돌아오는 길에 보현원에서 무신들을 위로한다며 오병수박희를 열었다(태권도의 전신이라도 하며 발기술 보다는 손을 써서 겨루는 경기)

이때 대장군 이소응이 젊은 사람과 겨루어 패배하자 왕의 중신 중 하나였던 한뢰가(6품), 대장군 이소응(3품)의 뺨을 때리고 왕과 주변의 신하들이 웃어 모욕을 주었다,

이에 정중부가 나서서 문신들을 퇴출시키고 100년 무신정권의 계기가 되었다

두경승은 이의민과 견줄수 있는 장수로 후에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집권한 후에 위협대상으로 두경승을 영종도(자연도)에 유배를 보내게 되어 이곳에서 잠들게 되었다.

영종국제도시에는 이처럼 우국 충절의 선조의 얼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조선말기 운요호사건의현장(1875년9월20일) 이였으며 영종진에서 추모를 하고있고,일제 강점기 3.1만세운동 기념비(용유동 3.28용유 독립만세운동))가 있으며.근현대사로 6.25한국전쟁 당시 KLO부대로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한  켈로부대 충혼탑(중구 을왕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