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1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1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 영종뉴스
  • 승인 2020.12.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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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교회는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처음부터 끊임없이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스도교인의 가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회이며,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생명의 시발점이고, 신앙교육의 가장 중요한 학교이며,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가르치고 전하는 성직자를 길러내는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7개 신학교 중 이혼 가정의 자녀를 받아주는 곳이 두 곳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즉 부모 두 사람 안에서 부성애와 모성애를 모두 느끼며 성장한 젊은이만 받았다는 것입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도, 부모가 둘 다 있다는 것을 ‘정상적인’ 혹은 ‘평범한’이라는 단어로 쓰기에, 이미 세상은 이혼이 너무 많아져 버렸습니다. 이혼한 가정 혹은 미혼모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들이 ‘우리는 비정상이냐,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냐’ 따질 수 있을 만큼 이혼율이 너무 높아서, 그만큼 편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미 이혼한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그 자녀들을 아프게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결혼하여 살고 있는 부부들 그리고 결혼할 사람들이 헤어지지 않고 약속한 대로 끝까지 잘 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혼의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입니다. 사랑보다 조건을 중시하는 것과 이를 조장하는 결혼 정보 회사도 문제이고, 국가의 인구 조절 사업으로 ‘오냐오냐’하며 양보할 일 없이 자라고, 화내면 달래주는 부모들 안에서 자라는 문화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성격 차이’를 이유라고 하지만, 사실 차이를 극복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2-30년을 함께 살며 지지고 볶은 형제자매와도 또 싸우는데, 평생을 따로 살다가 함께 살기로 약속한 이들이 어떻게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는 ‘공사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나는 이혼도 많아지는 듯 보입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않아서 생기는 고립감, 외로움, 우울증 등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란 매우 감정적인 공동체입니다. 힘들다고 하면 서로 알아주고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면서, 가족의 삶의 대부분이 공존하며 혈연으로 이어져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밖에서 안 내던 짜증을 집에 들어와 다른 가족에게 부리기도 하고, 잘못을 했어도 미안하다는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고 넘기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줄 것, 버리지 않을 것’을 서로 믿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직장에서 일하는 중에, 하는 일이 잘 안 되거나 힘들다고 하여 일을 멈추고 상사에게 가서 “저 힘들어요!”하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사는 가정과는 달리 이성적인 공동체입니다. 그곳에서는 서로의 할 일이 나누어져 있고 서로가 자신의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철저한 시스템 안에서 운영되지요. 그런데 이 이성적인 집단의 시스템을 가정에도 그대로 도입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듯합니다. 물론 가정 안에서 서로의 할 일을 나누어서 하는 것은 좋습니다. 누가 식사를 준비하면 설거지는 다른 이가 하고, 누가 청소를 하면 쓰레기 정리는 다른 이가 하고, 약속을 정하고 아이를 돌보고 서로의 외출 계획을 잡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회사의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시간에 집에 들어왔다고 해도, 오늘이 한 사람에게 많은 스트레스와 피로가 있을 수 있고, 한 사람에게는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날일 수도 있겠지요. ‘감정적인 공동체’라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때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위해서 더 많이 하기도 하고, 또 반대인 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맡은 일을 안 했다고 해서 “이건 네가 하기로 했잖아!”하고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결국 가정이 감정은 섞이지 않고 이성으로만 돌아가는 불행한 가정이 되고 말겠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가르치며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저의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고,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죽은 뒤에 하늘에 가서 받을 보상만이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이는 자기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면 받아들여진다.’ 하셨으며, 또 ‘장수’의 은총까지 누릴 것이라 하시며 현세에서도 분명한 보상을 받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부모에게 하는 모습이, 나중에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할 모습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배우자에게 하는 모습이, 나중에 여러분 자녀들이 그들의 배우자에게 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에게서 나왔기에, 나 자신도 하느님의 것이며 자녀들도 하느님의 것임을 기억하면서, ‘여러분의 가정을 하느님 사랑의 끈으로 완전하게 묶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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