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 영종뉴스
  • 승인 2020.11.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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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우리는 흔히 자신을, 예수님께서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리라’고 하신 ‘쓸모없는 종’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다섯 탈렌트를 받고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다섯을 더 벌어 칭찬을 받고 더 많은 일을 맡길 ‘착하고 성실한 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적당히’ 혹은 ‘나쁜 말을 듣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꼭 좋은 말을 듣지도 않을 만큼’의 삶을 지향합니다. ‘평범함’ 적당히 세상을 살고 적당히 세상 물정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지향합니다. 좋은 식당에서 선택할 때도 ‘A,B,C 코스’가 있으면 B코스를 시키고, ‘진, 선, 미’가 있으면 ‘선’을 시킵니다. ‘개성과 특별함’을 강조하던 2-30년 전과 달리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튀지 않음’을 가장 좋은 것으로 받들고, 이는 ‘믿는 이들의 삶’에까지 퍼져 있습니다.

‘시간마다 기도하고, 주일은 미사와 하느님 찬양에만 열중하고, 죄를 지을 때마다 고해성사를 보고,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성당으로 달려가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로부터 파문당하는 것을 죽는 것처럼 여기며 벌벌 떨던’ 중세 시대에는 어쩌면 이런 모습이 평범한 삶이었는데, 이제는 젊은 사람이 매일 미사를 드리고 많은 시간 여러 단체에서 봉사하면 그것은 평범한 것은 당연히 아니오, 특별함도 아니고 특이하게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평범함’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평범한 삶과 평범한 신앙생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니까 그 틈에 끼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까? 물론 저도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갈 곳은 천국이나 지옥이지만,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정화될 ‘연옥’이 있습니다. 연옥은 우리가 갚지 못한 죗값을 치르는 곳이라고 가르칩니다만, 결국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살 만한 영 즉 순수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져서 ‘하느님을 마주 뵐 수 있는’ 영혼으로 바뀌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한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지, 우리는 식사를 마칠 때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위령의 날에도 그들을 위하여 미사를 봉헌합니다.

우리가 이미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여 깨끗하다면, 나쁜 생각을 멀리하여 순수하다면, 기도하고 희생하여 거룩하다면 즉 이미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갈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 고통을 겪지 않거나 아주 짧게 거치고 하느님 계신 곳에 오를 수 있겠지요. 그날을 왜 그렇게 멀리에 두고 사십니까? 왜 한참 먼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까? 지금 당장 하나씩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대금업자라는 일 자체가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 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이 돈을 돌려받기까지 꽤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 탈렌트는 노동자의 15년 치의 임금보다도 더 큰돈입니다. 다른 이에게는 다섯 탈렌트를 주고 이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줬다고 해서 절대로 적은 돈을 맡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5년 치 임금이면 어림잡아도 얼마입니까? 연봉을 3천이라 쳐도 4억 5천이라는 큰돈입니다. “대금업자에게 맡겼어야지.”라는 말은 ‘그 큰돈에 대하여 돈에 대해 잘 아는 사람과 의논하거나 조언을 듣고 따랐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지요.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잘 쓰려면 그것에 대해 잘 아는, 즉 신공항 신자들은 신공항 주임 신부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인데, 주일마다 보고 듣기는 하는데, 따를 마음은 별로 없지요. 어찌 되겠습니까?

탈렌트는 각 사람이 가진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보호해 주는 일일 수도, 돈일 수도, 들어주는 일이나 가르치는 능력 모두 포함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중에 어떤 능력이라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가져서 ‘만능’으로 보인다고 해도, ‘나는 하나밖에 없어서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면 됐던 구약시대를 지나,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음도 잘못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저의 형제자매 여러분,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말합니다. “해야 할 일을 안 한 죄가 얼마나 큰 단죄를 받는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악행을 하는 자들, 살인자와 간음자만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지 않은 사람도 죄인이다.”선물을 충실히 사용하는 사람은 장차 그 선물을 더 많이 받겠지만, 받은 것을 그대로 놀리는 사람은 그것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은 이들은 그들이 받은 사랑마저 빼앗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