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은 한해의 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보편 달력 연도의 기준으로 삼는 예수님 탄생 즉 기원전 BC(before Christ)와 기원후 AD(Anno Domini)를 코로나19를 기준으로 삼는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을 만큼 힘든 해가 되고 있습니다. 한해의 마지막에 다가온 것처럼 코로나19도 함께 그 끝이 다가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성당을 다니면 다 똑같을까? 가족 중 하나만 열심이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복음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신랑을 기다리다 잠든 처녀들, 신랑이 언제 올지 몰랐던 열 처녀 가운데 다섯은 ‘늘 준비’하고 있었고, 다섯은 ‘때가 되면 하려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손에 등을 들고 있는 열 처녀의 겉모습은 누가 봐도 모두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문을 열어 달라고, 기회를 달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혹 ‘슬기로운 처녀가 어리석은 처녀에게 기름을 나눠서 함께 갈 수도 있지 않았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양보하고 나누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슬기로운’과 ‘어리석은’으로 나누신 이유가 무엇인지 바라보면, 슬기로운 처녀들은 평소에 자기 것을 나누고 양보하며 산 이들입니다. 그들의 슬기로움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오늘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과 자격만큼은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광은 부모 형제 자식에게조차 나누거나 양도할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누릴 수 있기에 “그러니 깨어 있어라.” 하시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삶은 늘 준비하는 것입니다. 물론 혼자서도 준비할 수 있지만, 우리는 쉽게 넘어지고 오해하고 어려움을 느끼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서로 끌어주고, 힘들 때 위로하고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나아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어 단체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신자들 모두가 한 단체에는 가입되어 더욱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