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희의 自由島市] 예술가의 똥
[이중희의 自由島市] 예술가의 똥
  • 이중희
  • 승인 2018.08.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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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만쪼니의 작품 '예술가의 똥'
피에르 만쪼니의 작품 '예술가의 똥'

[영종뉴스 백광부] 조영남 대작(代作) 논란을 보고 있자니 '예술가의 똥'이 생각났다. 

예술 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어떤 것이 예술작품이 되려면 그것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즉 예술작품의 예술성은 작품 자체에 혹은 그 내재적 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해석을 담보하는 관계성에 있다는 것이다. 

아서 단토는 이러한 예술작품의 관계성은 결국은 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하는데 예술작품의 관계성은 철학이지만 철학으로 예술작품의 은유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서 단토의 말을 '예술가의 똥'에 대입해서 풀어보자. 

이탈리아의 전위 현대미술가 피에로 만쪼니(Piero Manzoni 1933~1963)는 '예술가의 똥' 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만쪼니는 자기 사인과 시리얼 넘버(90개 한정판)를 새겨넣은 깡통에 자기 실제 대변을 30그램을 밀봉해 넣고 당시 같은 무게의 금값(그램당 1.12$)과 같이 값을 매겨서 자신의 작품 'Artist's shit'를 판매했다. 

캔에 인쇄된 글은 "정량 30그램, 신선하게 저장됨, 1961년 5월 생산되어 깡통에 넣어짐." 이 문구는 4개국어(이탈리아어, 영어, 불어, 독어) 로 인쇄돼 있다.

 '예술가의 똥' 한 캔은 지난 2008년 10월 소더비 경매에서는 £97,250에 팔렸다. 현재는 10만달러를 넘는다. 금값 보다 비싼 똥값이다. 

만쪼니의 작품 '예술가의 똥'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예술가의 육체 안에 있었던 것을 육체 밖으로 빼내어 보관할 때 발견할 수 있는 대자존재(對自存在, meta ego)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 하기도 한다. 

미국의 작가 스티븐 버리(Stephen Bury)는 만쪼니의 '예술가의 똥'에 대해 "미술시장에 대한 조크이자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및 미술품이 소비되고 생산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이라고 해석한다. 

만쪼니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정신과 물질 사이의 괴리를 줄이려고 했고 인간(화가)의 신체를 오브제화하는 현대 미술의 한 일가를 개창해서 인간 인식의 지평을 넓힌 미술라고 평가 받는다. 

어떤 것이 정확한, 혹은 옳은 해석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는 관계성을 '예술가의 똥'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성과 개방성,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힘, 혹은 그 자질에 있어서 예술가와 일반대중은 완전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다. 아니 다른 부류의 종이다.

예술 비평가 진 앤 빈센트 (Jean Anne Vincent)는 "현대 미술가(예술가)의 가장 두드러진 몰두 중 하나는 '대중은 결연히 속물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신념이다."라고 했다.

아마도 만쪼니는 '속물적인 대중들은 내 똥이나 먹어라'는 컨셉으로 작품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만쪼니님께서 똥 싸고 캔에 싸느라 수고 많으셨기에 똥 한 캔에 1억원이면 아주 싼 편이다.

조영남의 그림들은 바로 이런 현대 미술 작품이고 똥같은 작품이다.  대중들, 심지어는 예술인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조영남의 그림들은 조영남의 컨셉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조수를 썼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림의 가치는 변하지 않기에 구매자가 손해를 보는 일도 없어 법적으로 사기가 될 수는 없다.

조영남의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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