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2020년 9월 6일 연중 제23주일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2020년 9월 6일 연중 제23주일
  • 영종뉴스
  • 승인 2020.09.09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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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매일 사제관 거실에서 홀로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우리나라와 온 세계 그리고 특별히 미사와 영성체에 목이 마른 이들과 미사가 재개되기를 간절히 청하는 지향으로 미사 중에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 밖에 나가기 두려운 지금이지만 우리는 이 시간을 두려워하며 하염없이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쇄신할 기회로 만들어야 함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와 함께 신앙을 고백해 왔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자기 자신의 신앙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신앙인에게 이 시간은 오히려 하느님의 이름으로 투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순교자 성월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얼마나 찾으려고 했는지, 만나려고 했는지, 사랑하려고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신앙의 선조들 특히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그 간절한 바람이, 비록 그들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빼앗겼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황사영 백서 사건’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세워진 초창기, 1801년 일어난 신유박해에 관한 내용과 그 대응책에 관하여 ‘길이 62cm, 너비 38cm의 흰색 비단에 한 줄에 110자씩 121행 총 1만 3311자’로 쓴 글입니다.

충북 제천의 토굴 속에 숨어서 깨알같이 쓴 이 글은 중국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던 밀서입니다. 그러나 검문에 걸려 실제로 보내지지는 못했습니다. 황사영 백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염치없지만 죄인 엎드려 관면 하나를 청합니다. 저희처럼 박해의 고통 속에 있는 교회에 금식제를 관면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교우들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산속에 숨어있다가 3, 4일 혹은 1주일 만에 나와서 보리밥 한 덩어리를 얻게 되는데 먹으려고 보면 그날이 바로 금식일입니다(당시에는 금요일에 금식을 했고, 미사 전 24시간 동안 금식하였으며 특히 초기 우리나라에 아직 요일이 없고 미사를 드려줄 신부도 없었을 때는 음력으로 매월 7, 14, 21, 28일을 주일로 삼아 온종일 금식과 기도, 독서와 묵상으로 하루를 바쳤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에 이 밥을 먹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주교님, 3, 4일을 이미 굶었기 때문에 이 밥을 먹도록 해달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사는 저희가 며칠 굶어 배고픈 것을 못 참아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은 그 밥을 안 먹어도 되지만 그것을 먹지 않았을 때 이 불쌍한 교우가 언제 다시 밥을 얻을 수 있을지 그 기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임을 알리면서도 관면을 청하는 것이 부끄러워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어려운 때 이런 관면을 청하고 있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당시에는 진실로 두세 사람이 모여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마음이 아니라 모습을 똑같이 살려고 하지요.

지금이야 못하고 있지만, 반모임을 하면 몇 명이 함께 나와 기도했는지요? 선조들이 하도 당해서, 아직도 우리 신자들은 집에서 모여 기도하면 잡혀갈 줄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저의 형제 여러분, 교회법을 지키겠다고 미사를 드리기 위해 며칠씩 밥을 굶고,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발각되면 잡혀가는 와중에도 목숨을 걸고 모여서 기도했던 우리 선조들의 삶이, 우리 마음속에서는 그저 지나간 옛날이야기일 뿐입니까?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인가요?

목숨을 바쳐 신앙을 물려주신 순교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보일런지요? 9월이면 매일 순교자를 찬양하는 성가를 부르며 존경한다고 말하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밤입니다.
가정이 없으면 국가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가정 교회가 없으면 전체 교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과 모여 기도하십시오.

가족이 모여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사랑의 시작이며, 기도가 여러분 안에 주님을 머물게 합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임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