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2020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2020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영종뉴스
  • 승인 2020.06.25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이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씀인지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심판은 지옥과 천국을 나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사신 주 그리스도께서, 그 심판의 자리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어디로 가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자신이 너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지옥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고, 전쟁의 상황을 ‘지옥과 같다’고 말합니다. 전쟁을 겪어보신 분도 계실 텐데, 전쟁의 고통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최근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빠지면서 대화와 타협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처럼 ‘우리도 똑같이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전쟁을 유발할 가능성은 무조건 배제되어야 합니다. 결코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무참히 짓밟히는 상황은 전 세계 어디서도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 중에도 ‘강경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전쟁은 하느님의 법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위이며, 전쟁이 난 상황을 상상해 보면, 여러분의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할 상황이 올 것이고,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분의 가족이 죽어가는 모습이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은 실제로 그 전쟁보다도 더한 고통을 영원히 느껴야 하는 곳입니다.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우리는 그런 고통 속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언제 우리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다는 것인가? 흔히 남들 앞에서 ‘난 하느님을 믿지 않을 거야!’하며 공식적인 배교를 하거나, 미사와 전례에 참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냉담을 하는 것만을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라 여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좌 신부로 지내던 때에, 한 국회의원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는 본당 신자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 당에서 주장하는 국책사업이 있었는데, 워낙 큰 사업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천주교주교회 명의로 그 사업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가 더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담화문도 발표가 됐었습니다. 저는 그 문제에 대하여, 천주교 신자로서 주교회의에서 나온 공식적인 의견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을 건넸고, 그는 ‘본인도 그것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의 입장이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비단 이런 큰 문제에서만 주님을 모른 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에게 직무가 맡겨졌을 때,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바쁘니까!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직무는 못 맡는다고 하고 미사만 나와야지!’하며 주님께서 맡기시려는 직무를 모른 체하는 것.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였을 때 그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것을 주님께서 원치 않으심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혼 좀 나봐야 돼! 정신 차려야 돼!’하며 다른 이들 앞에서 창피를 주고 그를 무안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야 마는 것도 주님을 모른 체하는 것입니다. 식사 전에 전에 남들을 의식하거나 같이 먹는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식사 전후 기도를 안 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흔히 그리고 가장 많이 주님을 모른 체하고 살아가는 모습이겠지요.

우리 중에 “길거리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린다.”고 답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 대답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 것은, 머리로 안다고 해서 손발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쓰레기는 괜찮습니다. 월급을 받고 치우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굶어 죽어가는 이 앞에 그를 먹일 수 있는 이가 나뿐이라면,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 앞에 용서할 사람이 나뿐이라면, 사랑이 필요한 이 앞에 사랑을 줄 수 있는 이가 나뿐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굶주린 이를 먹이시는 하느님을 모른 체한 것이고, 자비하신 하느님을 모른 체한 것이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모른 체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저의 형제자매 여러분, 아는 것은 아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으로 드러나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모습을 삶으로 드러낼 때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입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드러낼 때, 주님은 우리를 안다고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부족함도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그는 아버지의 계명을 잘 지킨 이라고, 그는 나를 사랑한 이라고 증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