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2020년 5월 24일 주님 승천 대축일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강론] 2020년 5월 24일 주님 승천 대축일
  • 우경원 기자
  • 승인 2020.05.25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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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신공항 성당 양정환 (대건안드레아) 신부님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사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하고 말씀하시는 이 엄청난 권한의 주인이신 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었음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 바로 오늘 복음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의 생애를 글로 옮긴 사람들 즉 마태오와 마르코, 루카와 요한이라는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서를 집필하여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까지도 즉 예수님과의 지상 마지막 만남에서까지도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 즉 자신들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이 글이 진실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점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실제로 아주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부여하신 이 사명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선교’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자들의 사명을 수행 ‘당하는’ 입장에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여하신 사명이 ‘선교’, ‘복음 전파’, ‘세례’ 이런 한 단어로 단순하게 ‘예수님 알리기’로 넘겨짚을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분명히 세 가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물론 우리는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지만 사실 우리의 육신은 영혼이 신앙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세례성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즉 마음으로 주님을 믿겠다고 다짐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이 성당에 와서 세례성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지막까지도 의심하는 제자들이 분명 있었기에 그들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집을 버렸고 소유를 버렸으며 가족마저 버린 사람들입니다. 편안함과 평화로움을 추구하고자 예수님을 만나 따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했고 세상의 멸시와 박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용기를 낸 사람들이고 결국 칼과 십자가까지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부께서는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성자께서는 같은 사랑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의해 살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의 일치를 이루시는 관계 안에서 발하시는 사랑의 영이십니다.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세례를 받았고,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고 하느님의 이끄심대로 살겠다는 결심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어 하느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엄청난 사건이며, 세례식하는 그 시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사건인 것입니다. 교회의 청원과 하느님의 허락하심으로 세례를 받던 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자녀가 아버지의 명령에 귀 기울이듯이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교황님을 통해 말씀하시는, 사제의 강론을 통해 말씀하시고, 이웃을 통해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가? 성경에 뽀얀 먼지가 쌓여있지는 않습니까? 교황님의 메시지에 교황님의 문헌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모른다고요? 핸드폰을 그토록 들여다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라는 글씨를 넣으면 무수히 많은 영상과 글들이 나오는데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 신부 강론 잘하네, 이 신부 강론은 별로야!’ 강론을 들으며 자신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무엇이라도 하나 찾으려고 애를 써야지, 왜 신부의 강론이 이렇다 저렇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이웃을 통해 가장 가난하고 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늘 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사랑 안에 저의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 곁에 계시는데, 그분이 곁에 없는 것처럼 산 이들은 그 ‘끝 날’이 다가올 때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늘 가까이 모시고 산 이들은 그 ‘끝 날’이 오히려 기다려질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으니 우리는 두려워 떨지 않아야 합니다. 부족해도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까요. 회개하고 다시 하느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살고자 노력하면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그곳에 우리도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종뉴스 우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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