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영 칼럼] 우리도 그들처럼
[배준영 칼럼] 우리도 그들처럼
  • 배준영 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8.07.04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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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사진=pxhere)
refugee (사진=pxhere)

[영종뉴스 배준영 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 불결한 선실은 거친 파도와 함께 심한 멀미를 불렀다. 가녀린 양반집 규수였던 함하나는 1905년 5월18일 그렇게 10일간의 항해 끝에 태평양 한복판 하와이의 마우이섬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했다. 그녀를 포함해 총 7415명이 1903년 1월3일부터 1905년 8월8일까지 총 64차례에 걸쳐 하와이로 건너갔다.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받은 'An, Ark Poong'으로 시작해서 'Kyung chang, mother'로 끝나는 이들 명단이 인천의 이민사박물관 벽에 새겨져 있다. 이들은 월 15달러의 적은 급여를 받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고 또 일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정착 시작 1년만인 1904년에 한인을 위한 기숙학교를 세웠다. 일제치하에서 인구세라는 명목으로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1954년에는 모국의 과학발전을 위해 인천에 인하대를 세웠다. 17년간 하와이주 대법원장을 지내다 2010년에 퇴임한 한인 문대양씨도 있다. 하와이주 상원의장 한인 3세인 도나 모카도 김씨도 있다. 정착 환경이 비교적 나은 하와이에서는 민족적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

5년 전에 하와이한인회가 '미주한인 이민 110주년 기념식 및 조형물 제막식'을 미국 호놀룰루 파와와 인하공원에서 개최했다. '파독 광부 간호사 50주년'을 기념하는 리셉션도 독일 뒤셀도르프 에센에서 열렸었다. 두 행사 모두 우리 이민사에 남을 의미있는 장면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부터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도 바뀌었다. 외국이민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도 정립했고 필리핀 이민자 출신 국회의원도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벽이 높은 나라다.

라오스는 취업이민 쿼터가 자국에만 불리하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선 한국에 신부를 보내는 것이 민족적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한다. 7년 전 지금은 철거 중인 장충체육관에서 방글라데시 페스티발이 열렸다. 그 곳에 참석한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자국노동자 1500여명 앞에서 "여러분의 노력 덕에 나라경제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이 한국에 와 있는 방글라데시 대사입니다"라고 격려했다. "방글라데시는 결코 작고 가난한 나라가 아닙니다. 조국의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만세!"를 외치며 만세삼창을 했다.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1964년 차관을 빌리러 독일에 갔다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과 함께 눈물을 훔친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1인당 GDP가 100달러도 안되던 시절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나라도 우리나라에 오는 이민자들을 좀 더 공정하고 세심하게 대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정상외교에서 방문자는 항상 방문국 교포들의 안위와 권익을 챙긴다. 역지사지라 할까? 우리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잘되면 우리나라에 대한 우호도나 관계도 당연히 향상될 것이다. 세계로 약진하는 우리는 호혜적인 관점에서 이민자 특히 개발도상국 이민자들이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게 챙겨야 할 것이다. 최근 난민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정부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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