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령이 지하에서 운다.. 조국을 위해 몸바쳐,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데. 그들앞에서
호국영령이 지하에서 운다.. 조국을 위해 몸바쳐,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데. 그들앞에서
  • 우경원 기자
  • 승인 2019.06.07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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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지난 6일, 현충일 6.25 전쟁으로 희생한 장병들이 안장된 현충원에서 문대통령의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치켜세우는 발언, 충격적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김원봉은 1948년 월북 후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1기 대의원이 되는 등 북 정권 수립에 기여한 것은 물론 김일성으로부터 6·25 공훈자 훈장도 받았다" 

" 문 대통령은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광복군에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네이버에서 김원봉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898년 경남 밀양(密陽)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약산(若山)이다. 1918년 난징[南京]의 진링[金陵]대학에 입학하였고, 1919년 12월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하였다. 1925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을 지도하면서 중국 관내지역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중국국민당의 동의를 얻어 ‘조선의용대’라는 군사조직을 편성하기도 하였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하였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내다가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그 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9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그 후 1952년 5월 노동상, 1956년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11월 김일성(金日成) 비판을 제기한 옌안파[延安派] 제거작업 때 숙청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원봉 [金元鳳] (두산백과)

이날, 전 국민이 현충일날 경건한 마음으로 조국을 위해 희생한 그들의 가슴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위해,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추모하는 자리에 그들을 희생시키는데 가장 일선에 있었던 김원봉을 치켜세우는것은, 여야를 떠나서 옳은지 냉정하게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영종뉴스 우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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